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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림복지재단] 막히면 아프고, 소통되면 안 아프다. 아이콘 작성일 : 21년03월17일 09:39
글쓴이 : 유 감사 조회 : 634  
사자소학

전북 남원 산내면 지리산자락. 실상사작은학교의 사자소학 공부모임.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전북 남원 산내면 지리산자락. 실상사작은학교의 사자소학 공부모임.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코로나19가 오래 머무르면서 저자에 나갈 일이 많이 줄었다. 더구나 지난 겨울은 더욱 한적했다. 시간이 넉넉하고 넘치니 조금 무료하다. 왠지 심신이 활력이 없어지려 한다. 심심파적의 거리를 찾아 생기를 충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학교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 공부하자.” 의도는 심심파적이었지만 명분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이다. 작은학교 인문학 교사인 내게는 매 학기마다 과목이 주어진다. 그러나 겨울 방학에는 수업이 없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실상사가 자리한 산내면에 집이 있는 학생들은 나와 가까운 이웃이다. 이들에게 겨울 방학 특별 수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과목은 ‘사자소학(四字小學)’이다.

먼저 사자소학은 작자 미상이다. 예부터 <천자문>을 마치고 <명심보감>이나 <동몽선습>을 공부하기 전에 익혔던 학습 도서였다. 주자(朱子)선생의 <소학>과 다른 경전 중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뽑아서 만들었다. 구성은 사자일구(四字一句)로 되어있다. 부모님에 대한 도리, 부부의 도리, 형제간의 도리, 공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금 작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자소학은 교육, 생태, 여성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하고 계시는 김정희 선생이 시대에 맞게 편찬했다. 일면식이 없는 분이지만 고맙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교재가 많은 도움이 된다. 사실 그동안 가르치면서 몇 곳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의 시대와 맞지 않고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름 적절하게 해명과 해석을 했지만 늘 개운하지가 않았다. 김정희 선생이 새로이 구성한 구절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 만든 책은 먼저 성차별주의 문구는 빼고 고쳐 성평등을 지향했다. 예전 교재는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부생아신, 父生我身)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도다(母鞠我身, 모국아신)”로 시작한다. 그래서 교재대로 한자의 뜻과 음을 가르치고 해석하면 어김없이 학동들이 손을 번쩍든다. “스님 선생님, 말도 안돼요. 왜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나요?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지.” 간혹 이런 말을 하는 학동도 있다. “우리 집은 엄마가 회사 가고 아빠가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고 계시는데요.” 그야말로 개시난감이었다. 그때마다 구구하게 예전의 문화와 윤리를 들어 설명하는데, 하면서도 구차했다. 그런데 지금 교재는 이렇게 바뀌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시고(부모생아 父母生我) 부모님이 나를 기르셨도다(부모육아 父母育我).” 이렇게 고쳐놓으니 이제는 개시순항이다.

또 아예 삭제한 것도 있다. “무릎 앞에 앉지 말고 어버이의 얼굴을 우러러 보지 말라. 모름지기 큰 소리로 웃지 말고 또한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 이제는 사랑의 표현과 방식이 바뀌었으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빼는 것이 좋다.

실상사작은학교의 사자소학 공부모임.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실상사작은학교의 사자소학 공부모임.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새롭게 추가한 것도 있다. “유년운동(幼年運動)은 평생보약(平生補藥)이니라” 인터넷에 빠져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또 “천지의 은혜를 감사한 후에 먹어라.” “지나치게 (TV)를 시청하지 말라,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느니라”는 구절은 시대의 대안과 문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살짝 걱정된다. 요즘은 부모들이 TV와 인터넷에 푹 빠져서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부모님들은 이 구절을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이라고 했다. 전해오는 것들의 취지를 살피고 이제는 그 취지를 살리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시대와 시대가 소통하는 길이다. 그리고 새로 쓴 사자소학은 ‘부모의 도리’를 새로이 추가했다. 부모와 선생은 가르치는 자이지만 지배하는 자가 아니다. 자녀와 학생은 보호 받고 배우는 자이지만 지배당하는 자가 아니다. 그러니 마땅히 부모와 선생의 도리가 있어야 한다.

이제 작은학교 사자소학 교실 풍경을 감상해보자. 공부하면서 나와 학생들이 합의한 약속이 있다. “뭐든 하는 것 같이 하자. 살짝 체험만 하지 말고 확실하게 수확하자. 힘들고, 지루하고, 하기 싫고, 익숙해서 해이해지려는 시간을 통과하자. 재미있고 웃으면서 공부하자.” 학생들은 고맙게도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잘 따라주고 있다. “여러분, 공부는 생략과 건너 뛰기와 지름길이 없습니다. 한발, 한발, 또 한발,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학생들이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적기간섭(的期干涉)은 평생보약(平生補藥)이니라.

이제 학생들은 제법 한자공부에 맛을 보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월화수목금토일과, 자기 이름 세 자를 합해 아는 한자가 10개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는데, 이제는 대략 200자 정도는 아는 것 같다. 또 무심하게 사용하는 일상 용어가 실은 한자로 되어 있음을 알고, 단어의 뜻을 알아가는 배움이 기쁜 모양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부모님이 나를 기르셨도다’, 의‘부모육아(父母育我)’에서, 기를 육(育)이 들어가는 단어를 나열하면서 한자를 익힌다. 그러면 줄줄이 말한다. 체육, 육성, 훈육, 발육, 보육교사 안은영(‘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살짝 고친다). 그러다가 엉뚱한데로 빠지기도 한다. “아, 저도 하나 생각나요, 육포!” 에고~ 관셈 보살... 아마 마른 고기를 먹으면 성장할 거라고 그리 생각했나 보다. 간간히 ‘한자 아재 개그’는 돌발적으로 튀어나온다. 몸 신(身)과 관련된 단어, 그러니까 신장, 신체, 신심 안정, 장신... 이렇게 말하다가 돌연 매우 진지하게 ‘신발’ 하는 학생이 있다. 정말 신발이 웃을 노릇이다.

학생들의 돌발 아재 개그가 나오니 문득 옛날 그와 비슷한 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동승에게 <초발심자경문>을 한문으로 가르친 적이 이었다. 한자의 원리와 구성을 말해주고, 이어 뜻과 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뜻에 해당하는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했다. 이를테면 ‘큰 대’(大)를 설명하고 ‘대’가 의미하는 단어를 말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동자 스님 한참을 생각하다가 환한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한다. “아! 알았어요. ‘대나무’가 있어요.” 관셈 보살~... 또 이 분에게 ‘이로울 이’(利)자를 설명하고, 이 ‘이’자가 뒤로 가면 ‘리’(利)로 불린다고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유리하다’라고 하는 경우라고. 그랬더니 이 영리하신? 동자 스님 왈, “아, 그거 나도 알아요.”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 ‘리본’. 정말이지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이다. 그 시절 동자승이 올해 불혹이 되었다.

도토리묵을 만들려고 준비중인 실상사작은학교 학생.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도토리묵을 만들려고 준비중인 실상사작은학교 학생.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사자소학이 단순하게 한자를 익히는 공부가 아님은 당연하다. 문장에 있는 옛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을 배우는 공부다. 그리고 오늘 우리 삶과 연결하여 새로이 해석하고 그 정신과 태도를 실천하는 공부가 진정한 고전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굳이 많은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몸이 있겠는가”(제사지례, 祭祀之禮. 무수다식, 無需多食. 비유선조, 非有先祖. 아신갈생, 我身曷生.) 이 문장을 공부할 때 잠시 난감했다. 요즘 세대에게 제사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올까? 전통과 형식과 의무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지금 너희들은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나고 여기서 공부하고 있느냐고. 학생들이 답한다. 부모님이 계시고 조부님이 계셔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단지 생물학적인 ‘나’와 생활하고 있는 ‘나’를 넘어서 어떻게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내가 설명했다. “실은 말이다, 1980년대에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장발 단속’이라고 있었는데, 경찰이 자를 가지고 남자들의 머리카락을 재었는데 만약 기준을 벗어나면 파출소로 데리고 갔단다. 또 여자들의 치마도 기준에 넘게 짧으면 거리에 차단막을 치고 가두어 두었단다. 이뿐이 아니야, 노래 가사도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지했단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공기와 같이 누리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요구와 선택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란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나와 연결된 시간과 시대를 생각해 보자. 일제 강점기, 해방 공간, 남북 전쟁, 빈곤을 넘어서고자 하는 산업화 시대와 독재 시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회복하고자 했던 민주화 시대, 그리고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새로운 대안 문명을 찾으려는 지금. 그러니까 대안학교인 이곳 작은학교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렇게 혈연의 부모와 조상을 넘어 과거 세대와 연결되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연기법이라고 했고 인드라망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제사는 지금의 나/우리를 있게한 세대에 대한 고마움이고 추모라고 하겠다. 다른 말로 하자면 윗대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의 제사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무슨 ‘추모 사업회’나 ‘기념 사업회’가 현대화된 제사 문화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학생들 모두가 눈이 빛난다.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도토리묵을 만들고있는 실상사작은학교 학생들.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도토리묵을 만들고있는 실상사작은학교 학생들. 사진 실상사작은학교 제공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가 어린 세대에게 말 거는 방식이다. 일상의 대화와 함께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니 알차고 보람 있다. 이렇듯 공부는 대화의 최고 방편이고 기술인 거 같다. 방학 때 학생들에게 고대 의학서인 <황제내경>의 한 구절을 집에 써 붙이고 부모님들에게 설명해보라고 했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

“소통하면 아프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라는 뜻이다. 몸도 그렇지만 친구와의 사이도, 가족도, 직장도 이와 같은 이치이니, 이를 주제로 부모님과 대화해 보라고 했다.

자녀와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어른들이 많다. 어른들이여, “우리 제발 말 좀 하자”고 자녀에게 사정하거나 들이대지 마시라. 서로 정답고 의미있게 말이 오고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시라. 아! 그러기 전에 왜 자녀들이 대화하지 않으려는지 자기 점검부터 하셔야 한다. 꼭 그러셔야 한다.

추신) 우리 절의 선재 스님은 이번 학기에 중학생들에게 중국 아동들의 학습서인 <三字經>을가르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에게 처음 사용하는 교재인데, 반응이 궁금하다.

 

글  실상사 한주 &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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