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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림복지재단] 가장 사랑하는 것을 놓아주는 용기 아이콘 작성일 : 19년09월07일 13:17
글쓴이 : 유 감사 조회 : 94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⑤ 문학을 통해, 슬픔을 슬퍼하는 법을 배우다

릴케는 ‘벗을 위한 레퀴엠’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하는 이들이 연습할 것은 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는 것은 쉬운 일이라, 굳이 배울 필요가 없으니.”
영국 리버풀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삶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을 때, 나는 낯선 도시의 도서관에 간다. 그곳에 가면, 이렇게 많은 책들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의 이정표처럼. 사진 이승원
영국 리버풀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삶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을 때, 나는 낯선 도시의 도서관에 간다. 그곳에 가면, 이렇게 많은 책들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의 이정표처럼. 사진 이승원
놓아줄 수 없는 어떤 사람을 놓아주어야만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렸고, 게다가 난 절대 어리지 않다고 스스로 믿었기에 더욱 어리석었다. 휘몰아치는 감정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머나먼 간극을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모든 면에서 조숙하다 못해 조로해버린 척 연기를 했지만, 사실은 한번도 제대로 이별의 고통을 견뎌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필사적으로 그를 놓아주려고 했지만, 한 가닥 남은 미련의 밧줄이 도무지 끊어지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마치 도저히 깨어날 수 없는 숙취처럼 덮쳐오는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아침엔 ‘절대 전화하지 말자!’고 다짐해놓고서는, 저녁엔 엄마 잃은 어린아이처럼 거의 패닉상태가 되어 전화를 하기도 했다.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우린 끝났구나’라는 현실을 어김없이 마주하면서도, 바보 같은 기다림과 희망 없는 설렘을 멈추지 못했다.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수십번 되뇌고도, 막상 전화벨이 울리면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의 용기 없음에 절망했다.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매달릴 용기도 없었고, 영원한 작별을 고할 용기도 없었다. 내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말들은 레고 블록처럼 정교하게 조립되었다가,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폭격 맞은 건물처럼 허물어져버렸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이 아픔의 시간을 새삼 떠올리게 한 것은 릴케의 문장이었다. 릴케는 ‘벗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하는 이들이 연습할 것은 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는 것은 쉬운 일이라, 굳이 배울 필요가 없으니.” 이 문장을 편지지 위에 또박또박 손글씨로 적어 그때 ‘어쩔 줄 모르던 내 아픔의 시간’ 속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그때 이 문장을 봤다면, 그때 이 시를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힘을 내어 용감하게 그를 보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간직한 채 누군가를 놓아주는 법을 그때는 몰랐다. 다행히 이제는 안다. 생살을 찢어 도려내는 듯한 이별의 체험들, 그리고 수많은 문학작품의 힘을 빌려 어렵게 깨친 진실이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나를 파괴하지 않고, 누군가를 온전히 놓아주는 법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고, 그 아픈 사랑을 간직한 채 당신을 영원히 놓아주는 법을.

신과 같은 거리두기, 악마 같은 이해력

이런 ‘놓아주기의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속삭이는 아름다운 소설을 만났다. 바로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Children Act)다. 한동안 이 소설의 주인공 애덤 헨리라는 열일곱살 소년을 내 마음속에서 놓아줄 수가 없었다. 너무도 해맑은 영혼을 지닌 한 소년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열일곱살 소년, 애덤 헨리는 백혈병에 걸렸다. 소년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거부한다. 타인의 피와 나의 피가 섞여서는 안 된다는 교리는 애덤의 목숨을 위협하고, 애덤을 살리려 분투하는 담당 의사는 법원 명령을 통해 강제수혈을 이행하려 한다. 판사 피오나 메이는 이 사건을 맡아 갈림길에 선다. 이 아이의 종교적 신념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이 아이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

지금까지 피오나의 이력은 흠잡을 데 없었다. 피오나의 판결문은 너무도 아름답고 시적이라 동료 판사들은 물론 대법원장에게도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신과 같은 거리두기야. 악마 같은 이해력이야. 그런데 여전히 아름답단 말이지.” 신과 같은 거리두기, 악마 같은 이해력,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것. 이것은 문학이 갖추어야 할 세가지 요소처럼 들린다. 범속한 인간의 관점이 아닌 신과 같은 초월적인 시선으로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는 힘, 작가가 자신의 성별과 계급과 환경을 뛰어넘어 자신과 전혀 공통점이 없는 존재까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형상화의 힘. 그것이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해준 문학작품들의 공통적인 매혹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피오나의 신과 같은 거리두기와 악마와 같은 이해 능력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애덤 헨리를 향한 피오나의 판결이 바로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피오나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다. 판결을 내리기 전에, 병원에 누워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이 소년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이다. 석달 후면 성년(18살)이 될 이 아이가,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선택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미 애덤은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었고, 자신을 순교자나 영웅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고, 오직 장엄하고도 영웅적인 순교자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애덤을 바라보며 피오나는 깊은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피오나는, 애덤의 음악에 대한 열정, 글쓰기 재능, 다가오는 삶과 사랑을 향한 순수한 호기심 또한 포착해낸다.

피오나는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라는 곡을 연주하는 애덤의 바이올린 반주에 맞추어 예이츠의 아름다운 시를 노래로 불러준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하얀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애덤은 피오나의 해맑은 음성, 풍부한 감수성, 방대한 지식, 다정한 몸짓 하나하나에 매혹된다. 그 만남은 짧았지만, 애덤의 인생을 바꾼다. 아직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바깥세상을 충분히 체험하지 못한 순진한 소년은 피오나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소년은 처음으로 인생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아직 그것을 모르는 피오나는 ‘아이의 복지’를 최선의 가치로 삼은 판결을 내린다. “A의 복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시에 대한 사랑, 새롭게 발견한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활발한 사고력 발휘와 장난기 많고 다정한 본성의 표현이며, 그리고 아이 앞에 펼쳐질 모든 삶과 사랑입니다.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에게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판결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진실과 정의 또한 ‘삶’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는 얼마나 복잡한가. 문학은 그 복잡하고 미묘한 삶의 피할 수 없는 아름다움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출처 픽사베이
그리스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에게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판결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진실과 정의 또한 ‘삶’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는 얼마나 복잡한가. 문학은 그 복잡하고 미묘한 삶의 피할 수 없는 아름다움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출처 픽사베이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향한 비극적 행위

마침내 판결에 따라 수혈을 받아 건강을 회복한 애덤은 이제 종교가 아닌 사랑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애덤은 피오나를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의 아름다움을 향한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아이는 피오나의 출장지 뉴캐슬까지 따라와 ‘하숙생이라도 좋으니, 제발 판사님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피오나는 그런 과도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 피오나가 애덤을 단호하게 돌려보내며 볼에 작별의 키스를 하려 하자, 애덤은 고개를 돌려 피오나의 입술에 키스하고 만다. “한순간의 접촉이지만 키스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하는 입맞춤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어쩌면 두 사람이 평생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압축한 듯한 입맞춤. 이 세상에서 허락받을 수 없는 한 소년의 불가능한 사랑이 단 한번의 가능성으로 불타오르는 시간. 그 찰나의 순간에 담긴 영원의 다짐을, 피오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피오나는 애덤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지만, 그 순간 애덤은 소년에서 남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애덤은 피오나를 놓아주어야만 한다. 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향한 비극적인 놓아줌’이 <칠드런 액트>의 뒷이야기다. 내가 소설 속 주인공에게 다가가 술 한잔 사줄 수 있다면, 이 사랑스러운 소년 애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애덤, 이제 그 사람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을 부디 놓아주렴. 이별조차, 사랑이라는 거대한 책의 어엿한 한 페이지로 만들어보렴. 이제 모든 슬픔을 여기 놓아두고, 한없이 커다란 너의 꿈을 향해 날아가렴. 단 한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할지라도, 단 한번 사랑하고 다시는 그런 사랑에 빠질 수 없을지라도, 사랑은 우리에게 때로는 삶 그 자체보다 더 커다랗고 깊은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먼 옛날 내가 놓아준 그 사람에게도, 뒤늦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내게 이별마저 사랑의 표현임을 가르쳐주어서 고맙다고. 사랑을 간직한 채 이별할 수 있어서, 당신과의 모든 순간은 끝내 아름다웠다고. 이제 나는 안다. 온 힘을 다해 사랑하기에, 온 힘을 다해 놓아줄 수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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