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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림복지재단] 노브라 유목민이 찾은 천국...와 이건 진짜다. 아이콘 작성일 : 18년08월20일 09:10
글쓴이 : 유 감사 조회 : 53  
   (위기의 주부) 모유 수유가 안겨준 자유..25년 브라 생활을 청산하다.
 나는 나대로 브래지어를 착용함으로써 여자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막연한 설렘과 불안을 느꼈다.
 나는 나대로 브래지어를 착용함으로써 여자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막연한 설렘과 불안을 느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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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친구들이 하나둘 "나 브래지어 찼다"고 고백할 무렵. 나는 내가 언제쯤 브래지어를 찰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만큼 신체 발육이 빠르지 않던 1990년대 중반. 유독 키가 크거나 조숙하던 아이들을 빼곤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2차 성징을 겪었다.

나의 가슴도 봉긋 솟아났고 멍울이 잡혔다. "가슴이 아파." 목욕하다 엄마에게 말했다. 다음 날 엄마는 속옷가게에 나를 데려가 면으로 된 브래지어를 사주셨다.

생각해보면 왜 브래지어를 차야하는지 이유를 들은 기억은 없다. 너도 가슴이 커지니 엄마처럼 차야 한다고 들었고, 나는 나대로 브래지어를 착용함으로써 여자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막연한 설렘과 불안을 느꼈다. 속옷 가게 아주머니는 줄자를 꺼내서 내 가슴둘레를 쟀고, 내 몸을 위아래로 훑더니 말랐다면서 가장 작은 사이즈를 꺼내주셨다. 티셔츠 위에 덧입어보라고 했다.

브래지어를 차기 전 두근대던 설렘은 바로 깨졌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겨드랑이를 긁적이며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엔 다 그래, 차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속옷 가게 아주머니와 엄마는 이 사이즈를 해야 브래지어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 했고 티셔츠 위에 브래지어를 우스꽝스럽게 찬 채 거울을 바라보면서 나는 울고만 싶었다.


브래지어와의 싸움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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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브래지어와 도무지 친해질 수 없었다. 이 답답한 것을 어떻게 하면 덜 답답하게 입을까가 매일 고민이었다. 엄마는 훅(연결고리)를 덧대어줘서 가슴둘레를 늘려주시곤 했다. 하지만 여름철만 되면 가슴에 땀이 차서 불편했고 친구들도 저마다 브래지어를 차기 싫다며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절대 브래지어와 러닝셔츠(아래 러닝)를 벗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속옷(러닝) 안 입은 애들은 학주(학년주임)가 브래지어 끈 당기잖아."
"'미친개(학년주임의 별명)'가 브래지어 안 한 애들 등짝 때리고 다녀."


고등학교 여름철, 하얀색 교복 상의를 입고 책상 앞에 앉아 등을 구부리고 있는 아이들을 뒤에서 보면 옷 안에 무엇을 입었는지 훤히 드러났다. 나는 남자 선생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도 답답한 브래지어를 결코 벗지 않으리라, 러닝도 꼭 입으리라 굳게 결심했다.

내 돈으로 브래지어를 사기 시작하면서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떤 브래지어도 편한 것이 없었고 가슴을 조였다. 차선책으로 고무줄을 살짝 잘라서 느슨하게 만들거나, 하단부를 칼로 찢어 와이어를 빼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 몰래 훅을 풀어두기도 했고, 행여 누가 알아차릴까 봐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풀고 채웠다 반복했다.

브래지어를 벗을 생각은 못했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브래지어를 차지 않으면 가슴이 처진다'와 '차지 않아도 된다'로 의견이 나뉘어 분분했으나, 가슴이 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배적이었다. 그건 여성으로서 젊음과 탄력, 매력을 잃는 것과 다름없었다.

집에 오면 브래지어를 벗고 헐렁한 상의로 갈아입는 게 제일 먼저 하는 의식이었다. 고비는 여행이나 워크숍처럼 다른 여자들과 같은 방을 쓸 때 발생했다. 나는 브래지어를 벗고 자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벗고,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가만 보니 다들 브래지어를 벗고 자는 거 같지 않았다. 밖에 나왔으니 참고 자는 건지 아니면 나만큼 불편하지가 않은 건지 궁금했다. 나는 불 꺼진 방에서 꿈지럭거리며 이불 속에서 브래지어를 벗어 이불 안이나 베개 뒤에 숨겨놓았고 아침이 되면 상의 속에 슬쩍 감춰 화장실에 가서 입고 나오곤 했다.

한 친구에게 브래지어가 답답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늘 한 몸처럼 브래지어를 입고 자곤 해서 오히려 벗으면 어색하다고 했다. 가슴을 압박하는 상태가 더 익숙하다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잘 때조차 브래지어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잘 때는 물론 집에서조차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나는 뭔가 위반하고 있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발가벗고 자는 것만 같았고, 발라당 까진 여자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유 수유, 아이를 위해 브래지어를 벗다

큰사진보기 나는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가슴 해방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나는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가슴 해방은 느닷없이 찾아왔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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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 없는 브래지어를 사고 가슴 고무줄을 잡아당겨 늘리고 훅을 풀어두고 하면서 버틴 20년이 지났다. 나는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가슴 해방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완전 모유 수유'에 성공한 엄마들은 하나같이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야 모유가 더 잘 돌 수 있다고 했다. '노브라'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필요했다. 브래지어 대신 수유패드를 민소매 티 안에 붙여넣었다. 모유 수유 기간 동안 젖이 줄줄 흐르고, 가슴이 부풀어 아파올지언정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편했다. 게다가 당당할 수 있었다.

'내 가슴은 섹시할 필요가 없다오. 아이에게 젖 물리는 가슴이라오! '

문제는 모유 수유가 끝난 후에도 브래지어를 찰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자유의 맛을 봐버린 거다. 노와이어에 바람 술술 통하는 매시 소재의 브래지어도 견딜 수 없었다. 그때부터 '브라탑'을 찾았다. 가슴 부분에 캡이 들어가 유방의 모양을 잡아주면서 별도의 속옷을 추가로 입을 필요 없는 '브라합체형' 민소매티라고 할 수 있겠다.

내 몸에 최적화된 브라탑을 찾기 위해 각종 브랜드와 마트는 물론 인터넷 쇼핑몰을 섭렵했다. 의외로 가슴을 꽉 조이지 않는, 밴드(고무줄)가 없는 브라탑 찾기가 쉽지 않았고 브래지어만치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게 2년 동안 헤맨 후, 마침내 헐렁하면서도 가슴 부위의 캡을 탈부착 할 수 있는 브라탑을 찾았을 때 어찌나 기뻤던지.


브래지어 차지 않는 여름은 천국이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 건 금기 같다. 같은 여성에게조차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다고, 내 가슴을 어떤 장치로도 압박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답답함을 참지 말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슴을 동여매며 압박하는 브래지어가 아니어도 다양한 속옷이 많이 나와 있으며 우린 그걸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브래지어만이 전부가 아니다.

폭염이 이어진 이번 여름, 운동용을 제외하고 훅이 달려 있거나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 가슴을 조금이라도 압박하는 밴드가 둘러진 브라탑을 모두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래도 가슴이 맵시 있게 보이긴 해야지, 브래지어는 있어야지' 하던 미련을 버렸다. 타인의 시선이나 나의 욕심을 위해 불편함을 참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완전한 '노브라'는 아직 요원하다. 유두가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각인되어 있으므로. 브라탑의 캡을 뺐다가 끼우는 걸 잊어버리고 외출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누구 하나 내 가슴을 유념해 보지 않을 테지만...


브라탑조차 너무 더웠던 요즘, 내가 찾은 차선책은 티셔츠 안에 헝겊을 덧대어 얇은 캡을 끼워 입기다. 덥다고 몸에 쫙 달라붙는 '끈 나시'로 된 브라탑 하나만 입고 돌아다니기엔 바닷가가 아닌 이상 사람들 눈초리가 따갑고, 그렇다고 유두가 티 나게 다닐 자신도 없다. 면이 두꺼운 옷을 입자니 덥고, 어깨가 괜히 움츠러드는 것도 싫다.

대신 헐렁한 티 내부에 헝겊으로 가슴 부위를 덧대거나 입지 않는 브라탑 앞부분을 잘라내어 붙이면서 유두가 돌출되지 않을 정도로만 보완해 입고 다녔더니, 이 정도만 해도 천국이었다. 가슴을 당당히 펼 수 있었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을 수만 있다면 바느질의 번거로움 정도야 얼마든지 치를 수 있었다. 참으로 눈물겹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 여름. 등판과 가슴 사이로 흐르는 땀이 금세 마른다. 왜 이런 걸 모르고 여태 살았나. 더워도 옷을 두세 겹씩 입던 날들, 가슴을 조이던 날들을 끝났다. 아마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못 돌아갈 것 같다.
편함에서 불편함으로는 못 돌아가는 것이 삶의 이치. 만약 돌아가기를 선택한다면, 25년 전 열세 살의 나에게 말해주련다.

'브래지어, 그거 차지 않아도 괜찮아.'

거울 앞에서 울고 싶던 그 소녀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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