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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림복지재단] 도망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이콘 작성일 : 18년04월09일 09:58
글쓴이 : 유 감사 조회 : 86  

(서평) 이종범 지음 <그래, 잠시만 도망 가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한 시대를 풍미한 말이었다. 그동안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청년 세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을 통해 비로소 '나, 지금 아파'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왜 내가 아픈 거지?'라며 이유를 모르는 청년 세대는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청년 세대는 '힐링'이라는 말을 찾으면서 스스로 이겨내고자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청춘이 꼭 '아파야 한다'는 또 다른 의미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라며 그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아픈 것을 꼭 참아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청춘이라서 아픈 게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왜 우리가 이렇게 아파야 해?' '청춘이라서 아프니까 꼭 참고 견뎌야 한다고?'라며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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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물은 방송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입니다. 병원에 가아죠!"라고 말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청년 세대의 공감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청춘은 아픈 게 정상이니 꾹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아프면 쉬거나 병원에 갈 시간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의 저자는 "도망쳐도 된다"라고 말하면서 책에서 오늘날 청춘이 마주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 세대가 가장 많이 하던 말이 있다.
"넌 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그리고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수많은 위인들이 이겨내고 극복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심지어 이런 유행어도 있었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거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 소풍과 수학여행을 대신해서 가는 곳의 이름이 '극기 훈련'이었을까. 그렇게 나이를 먹어서 군대에 갔더니 '하면 된다'가 공기처럼 흐르는 곳이었다. 그러고 나서 사회에 나왔더니 SNS와 인터넷, 서점에는 누군가가 극복하고 이겨내고 뭔가를 해낸 이야기들뿐이다. 그 누구도 도망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겁쟁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도망자의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고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15년, 20년 동안 우리 모두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쓰러져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아무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렇게 말하게 된다. '도망가면 안 돼, 피하면 안 돼, 왜냐면 그건 패배자, 겁쟁이, 루저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본문 29)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 위즈덤 하우스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 , 위즈덤 하우스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프다고, 힘들다고 도망가면 소위 말하는 '패배자, 루저'로 낙인이 찍혀버리기 때문이다. 타인의 평가를 굉장히 신경 쓰는 한국 사회에서 '패배자, 루저'로 낙인찍히는 일은 무엇보다 두려움을 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프더라도 쉽게 도망치지 못했다.

그리고 윗글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항상 누군가 시련을 극복하고 이겨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이 아픔을 참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버티고자 했다. 우리가 '멘토'로 만나는 사람들도 "저도 힘들었습니다"라며 끝까지 버티고, 잘 해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점점 우리는 도망칠 곳이 없어졌다. 도망치는 게 안 좋은 거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도망치는 일을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게 된 거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쓰러져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못했다. 마음은 '너무 힘들어'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어도 애써 무시했다.

괜찮은 척을 하면서 버티던 청년 세대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고, 꿈이 없거나 꿈을 향해 제대로 가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죄책감을 무겁게 지니기 시작했다.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의 저자 이종범은 책에서 다른 사람과 달리 이렇게 말한다.

아직까지 자신에게 뻔뻔하게 "잠깐 도망치자"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면, 한번 권해보고 싶다. (본문 33)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모두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데, 나 혼자 도망치는 일은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참아라. 참고 견디면 봄날이 온다'고 말하니 어찌 하겠는가.

이에 대해 저자 이종범은 책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죄책감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길은 '틀린 길'이나' 비겁한 길'이 아니라 좀 더 '돌아가는 길'일 뿐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책에서 아래와 같이 덧붙이고 있다.

가끔 자수성가형 꼰대들의 일갈에 질릴 때가 있다.
"모험을 해! 리스크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어! 안정감 따윈 무의미해!"
물론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같은 수준의 모험을 강요하는 것 역시 숨 막히는 폭력이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위험에 대한 강한 멘탈을 갖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남들보다 유독 더 불안정한 미래에 취약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들에게도 멋진 작품의 씨앗이 있을 수 있다. 오직 모험만이 그 씨앗을 싹트게 하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오직 모험만이 창작자의 길을 열어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빙하기의 끝을 기다리는 겨울잠을 자고 있는 찬란한 꿈은 자칫하면 언제든지 동사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선가 강한 심지로 칼바람 앞에 서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 순간이 오면, 그때는 과감하게 뛰쳐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전에 미리 죽어버려 화석이 된 꿈을 보고 싶지 않다면, 부디 잘 버텨주길. 부탁한다. (본문 63)

오늘 당신은 어떻게 하루를 버티고 있는가. 분명히 우리는 모진 아픔과 당당히 맞서야 할 때가 찾아온다. 하지만 모든 순간을 다 맞설 수는 없다. 억지로 마음을 태워 짜낸 오기로 버티다 영영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명장은 물러날 때를 알고, 적절히 물러났다가 다시 기회를 노린다고 말하지 않는가.

오늘도 '부모님이 저렇게 기대하는 걸. 난 잘해야 해'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웹툰 작가 이종범의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를 추천하고 싶다. 혜민 스님이 말씀한 멈추면 때때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잠시만 도망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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